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대중가요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박달재는 조선 중기 박달과 금봉의 슬픈 사랑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예전에는 충주와 연결된 유일한 길이어서 통행량이 많았으나, 현재는 통행의 편의성이 좋아져 예전만큼 교통량이 많지 않습니다. 굽이굽이 굽어있는 이 고개는 돌아가는 묘미가 있는 것인지, 최근에는 새로운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을 받고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박달, 금봉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를 거름삼아 다른 사랑이 돋아나는 길이라고 한다나요?
특히 최근에는 박달과 금봉의 한풀이를 위해 조성한 박달재목각공원 및 목각전시체험장 등 나무의 낭만까지 느껴보실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박달재는 천등산뿐만 아니라 인근에 인등산과 지등산도 함께 있어 天, 地, 人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으로,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늘에 천제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입니다. 언어학적으로도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으며,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민족의 역사성을 높다랗던 재에 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자동차를 이용하여 10여 분만에 재를 넘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박달재와 다릿재를 넘으려면 걸어서 며칠이 걸렸다고 합니다. 또한 고갯길이 워낙 험하고 가파른 데다 박달나무가 우거져 있어 호랑이 같은 산짐승들이 불시에 튀어나오는 것은 물론 행인을 노리는 도둑이 많아 이곳을 넘는 새색시는 두 번 다시 친정에 가기 어려웠다고도 하는 슬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친정이 그리워도 다시는 갈 수 없는 슬픔에 시집가는 새색시가 눈물을 쏟는다고 해서 '울고 넘는 박달재'라고 불륀다고 하네요.
박달재 상세보